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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한 죽음> 후기 - 강덕원
: 관리자   :   :   : 2010-04-16 20:12:31  ㆍ: 6854

극장 내부는 파란 조명으로 텅빈 무대를 비춰주고 있었다. 소극장의 시설이 너무 좋았다. 일반 대학로 소극장의 1.5배 정도.. 공연의 시작은 조용했다. 사람의 눈치를 살피듯 스르르 하얀 조명이 들어왔고, 보통 같으면 프롤로그 음악같은 것이 나왔을터인데.. 조용했다. 조명만이 켜져있을 뿐. 그래서 무대 전면을 눈으로 이리저리 돌렸다. 갑자기 소름이 돋는다. 머리하나가 나와있다. 빈틈이 많아보이는 배우가 나와 무대를 힘들게 걷는다. (난 빈틈이 많을수록 그 사람을 신뢰한다.)

 

어떤 형태와 규칙을 가진 걸음으로 걷는다. 나는 이런 형식을 갖춘 움직임을 명품극단에서 본 경우가 많다. 처음엔 이것이'누구의 것이다.' 라고 규명지어진 틀에 대해서 갇혀진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것을 배우 스스로가 극대화 시켜서 무대로 보여준 것이 동시대에 최상의 상품이라면, 그 배우의 역량으로써 공연이 평가 되는 것이다. (동시간도 상관없다.) 어쨋든 중요한 것은 뒤에 나오겠지만 예술가의 창조보다도 시도와 도전 그리고 발견이다. (이것은 반전으로써 놀라움을 준다.) 이내 공기는 그 배우의 호흡과 움직임으로 둔해진다. 난 매서운 눈초리로 무대를 쏘아봤다. 배우의 정면 샷은 우리 내면에서 뭔가를 끌어올렸다. 뭔가 개그의 호흡을 가졌던 것 같다. 그 순간 관객에게 '쉿!' 하며 관객을 압도한다.  그이후 부터 배우와 관객이 호흡을 같이하며 시작이 편해졌다.

 

큰 공 3개의 오브제로 아주 많은 것들을 표현한다. 이것은 그냥 공이 아닌 렙으로 씌어진 공이었다. 분명 여러 시도중 가장 바닥에서 신체를 이용한면서 도움이 될 만한 행태로 변형이 된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창조란 작업이 예술가들에게 가혹하고 머리가 깨지는 작업임이 분명하다. 그럼에 우리가 생각해낸 발상과 창의력은 이미 거의 모든 한계에 달해있지 않나 싶다.(분명 그 한계란 규명 지을 수 없다. 하지만 정말 번뜩인 것이 아닌한...이미 누군가의 것이 아닌가?)

 

오브제의 발견이야 말로 그 값진 열매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맛볼 수 있지 않나, 요즘 그런 생각이든다. 그것의 효과는 워크샵을 통해 톡톡히 경험을 해보았다. 머리 몇몇의 힘은 새로움을 낳는다. 그것은 새로움의 분위기와 효과를 주는 것이지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것은 기존 틀의 변화이다. 그리고 놀라움은 그렇게 서서히 무대에서 축적이 되어 심리적으로 압도하게 된다. 오브제 공과 배우들의 신체는 하나가 되어, 관객들로 하여금 긴장의 해소를 돕는다. 어릴 적 지금의 오브제와 같은 공이지만, 크기가 작은 공 위를 지나가려고 시도하다 몸이 만신창이가 된 경험을 갖고 있다. 오브제는 이렇게 추억을 환기시켜주는 하나의 매개체로써 관객의 능동적인 참여를 무의식 중에 관심과 집중이란 효과로 작용한다. 그리고 그 배우는 압축적인 행동이나 반복을 통한 즐거움의 에너지를 뿜어낸다.

 

행복한 죽음은 말 그대로 인간의 숭고한 죽음을 어떻게 풀어낼 지, 고민을 많이 한 작품이다. 배우들은 희극과 비극의 정의로부터 시작하여, 희극 속에서의 비극을 관통한다. 희극의 모든 부분에서 우리는 시선을 뗄 수 없다. 그리고 그 속에서의 비극은 정말로 삶의 일부분을 그대로 옮겨놓고 따온 듯 했다. 진실된 삶을 무대에서 본 적이 얼마나 있던가? 나는 공 위에서 이바노비치와 이바노브나(그의 부인)의 만두를 먹는 장면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진실로 보였다. 만두를 먹으려 하는것이 손까지 빨아버리는 상황. 그리고 포도 껍질보다도 핵심만 먹는 우리의 모습을 사랑스러운 연인의 스킨쉽(뽀뽀나 키스)으로 풀었던 장면, 정말 너무 좋았다. (내 감각을 일깨운다. 에로티시즘이 내재되어있는 장면이다. 웃음)

 

일상에서 우리들은 시기와 질투, 그리고 서로의 부대낌으로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그런 사람의 이야기, 삶을 무대에서 표현 한다는 것이 여러 소극장에 만연한 보통자연스러운 연기일까? 란 생각이 이 명품의 성격과 충돌한다. 공기는 삶의 밀도를 압축시켜 놓듯,농밀하고. 배우들은 밀도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플렌의 흔들림이 없다. 그래서 명품의 공연을 본 후엔 항상 공허함이 크게 뒤 따른다. 무대 밖의 공기와 공연 중 무대의 공기가 너무나 다르기에.

 

전반적으로 텅 비어있던 무대를 자신들만의 언어와 오브제의 활용으로 밀도있는 공간 활용을 했지만, 공연 중 마지막 장면인 빨래 부분은 이 앞의 밀도를 팍 죽이는 계기를 만들었다. 역동적이면서 희극적이었던 분위기가 비극(행복한 죽음)을 맞이하면서, 어떤 의미가 부여 되는 시점에서(?) 전체의 맥이 풀어졌다. 오히려 쌓아왔던 집중이 깨지면서 의미전달을 흐리게 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발전된 극의 형태가 만들어질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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