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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GAME-죄와 벌> 후기 - sun2y
: 관리자   :   :   : 2012-03-24 20:30:57  ㆍ: 5075

명품극단의 도스토예프스키 원작 <죄와벌>의 두 번째 공연. 2008년에 국립극장에서 봤던 <죄와벌>과는 너무나도 다른 작품이다. 이 정도면 재창작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두 작품을 모두 봤더라도 놀라지 않았을까? 인물, 사건, 배경만 같고 내용은 전부 새롭다. 제목부터 <더 게임>으로 바뀌었고 <죄와벌>은 부제로만 사용되었다. 배우가 4명에서 6명으로 늘어났기로 몇몇 인물이 추가되었을 것이라고 상상은 했으나 그 변용이 과히 놀라울 정도다.

 

2008년에는 라스꼴리니코스, 쏘냐, 두냐와 스비드리가일로프만 등장했는데 이번 작품에는 검사인 포르피리와 검사보 자묘토프를 등장시켜 범죄 수사극 처럼 꾸몄다. 그러니까 2008년의 공연은 범죄 이후의 일들, 즉, 양심, 고백, 선교, 속죄 등등의 이미지가 강해서 죄<벌 의 형상이었다면, 이번 공연은 추리, 수사, 심리게임, 함정, 심문 등등의 이미지로 죄>벌 의 형상을 보여준다.

 

좋아하는 극단에 연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던 전작의 느낌으로 인해 기대가 많았던 연극이다. 초반 20분은 이것 저것 볼 것도 많아 신기하고 재미있게 보기도 했고, 실력 있는 배우들의 연기에 만족하면서 보았으나 그 이후부터는 어쩐지 점점 불만스러워졌다. 드라마의 탓은 아니다. 시도도 좋았고 전개도 좋았다. 오히려 고전을 동시대적인 고민으로 풀어내면서 사용한 다양한 실험적 요소들이 고전에 맞물리지 못한 것이 거슬렸던 것 같다. 극 중에서 '과학수사를 해야지 어떻게 감으로 수사를 하느냐'라는 질문이 어색하지 않도록 구 러시아가 배경이 아니었더라면 좋았을 뻔 했다. 오늘의 서울 한복판이어도 멋졌을 텐데...

 

그랬다면 관객들은 그 긴 러시아 이름들 때문에 헷갈려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라스꼴리니코프의 이름은 '로지온 로마노비치 라스꼴리니코프'로 극중에서 부를 때 Full Name으로도 나오고, 로지온, 또는 로쟈, 로마니치로도 불리운다. 로지까도 나왔나? 이건 기억이 가물가물..'죄와벌'을 읽었든 읽지 않았든 인물을 지칭하는 이름이 많으면 관객은 어렵게 느낄 수 밖에 없다. 여기엔 '뿔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 라스꼴리니꼬바' 도 등장. '로지온 로마노비치 라스꼴리니코프'의 어머니 되시겠다. 끝나고 나오는데 어떤 사람이 엄청 졸았다며 '이름이 조낸 길어서 어려웠어.' 한다. 이보게 이 사람아..동생인 두냐 ('아브도찌야 로마노브나 라스꼴리니꼬바' 혹은 두네치카 로도 불림) 가 안 나온 것을 다행으로 여기시게.
 

 무대, 영상, 음악

 

입장하니 극장이 온통 그물이 거미줄처럼 엉켜있다. 무대와 객석, 1층과 2층 할 것 없이 모두 촘촘히 얽혀있어 관객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한국공연예술센터는 예술간의 통섭에 관심이 많은 단체인데 솔직히 그 동안 대학로 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관람한 연극 작품 중에서 가장 그에 걸맞은 무대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무대 바닥 에서부터 2층은 물론 이거니와 사용하지 않는 객석의 양 옆 날개까지 무대로 이용되었다. 영상, 음향, 퍼포먼스, 마임, 댄스와 현대무용까지 쓰지 않은 것이 뭐가 있나 싶을 정도.

 

관객들은 입장하면서부터 이런 재미있는 무대에 흥미 있어 했는데 솔직히 나는 거미줄뿐 아니라 무대 시안처럼 이렇게 거미가 통째로 있었어도 좋았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좀...유치한가?

사실 거미줄은 무대에 자주 사용되는 편이라 그닥 새롭지 않았고 이것이 주는 의미도 너무 뻔해서 상징적이라고 하기에도 창피하다. 오히려 유치해도 거대한 거미를 가져다 놓는 것이 더 새로울 것 같은데...

거미의 몸통 부분에 해당하는 무대 깊숙한 곳에는 영상이 설치되었다. 입장하고부터 계속 영상이 나오고 있어서 열심히 봤는데 뭔지 모르겠더라. 곧 금방 흥미를 잃고야 말았다. 나중에 프로그램을 보니 이 영상이 라스꼴리니코프가 전당포 노인을 살해하는 장면이었다고 한다. 응??? 전혀 몰랐다!!!!

 

극이 시작되면 알몸의 남자가 마치 에일리언의 알에서 깨어나듯 투명한 비닐을 찢고 나온다. 라스콜리니코프의 자아, 혹은 죄의식, 혹은 양심..뭐 그런 것을 상징하는 배역이겠다. 이런 그물 속에서 사람들이 나오는 것도, 마임이스트나 현대무용수가 주인공의 자아를 하는 것도 너무 자주 보아온 탓에 새로운 시도나 흥미로운 접근으로 느껴지지가 않았다. 좀 더 극에 유기적으로 달라붙었다면 좋았겠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오히려 반감만 생기더라는...

 

잠시 후엔 그물 속의 라스콜리니코프도 깨어난다. 그의 그물은 점점 아래로 떨어지는데 라스꼴리니코프는 비명을 지르고 있고, 어머니와 소냐는 그 옆에서 뭐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신은 용서하실 거에요! "로지온! (라스콜리니코프의 이름) '등등.. 교수형 장면인가? (원작에서는 교수형 장면이 없으니 라스꼴리니코프의 심리 상태를 반영한 것일 것이다.)

 

바닥은 십자가 모양으로 뚫려있다. 아니 도끼 모양인가? 보는 사람의 의지에 따라 십자가일 수도 도끼일수도 있겠다. '죄=벌'의 상징인가? '도끼'로 사람을 죽였으니 '신의 심판'이 기다린다..뭐 이런?

 

검사보인 자묘또프는 포르피리와 라스꼴리니코프의 심문 과정에서 그 내용을 기록하는 타이프를 친다. 2층의 객석 날개 난간에 대고, 계단이거나 바닥일 때도 있다. 무대에 타이프라이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손가락 사이에 반지를 끼고 아무 곳에나 두드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그것이 타이프라이터의 소리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라스꼴리니코프에게는 그것이 어떻게 들렸을까? 자묘또프는 타이프를 치는 것과 동시에 라스꼴리니코프의 심리 상태를 나타내주는 음향도 맡고 있다. 기계적인 주파수를 이용해 관객들은 라스꼴리니코프의 긴장 상태와 초조함을 읽을 수 있다. 이 음향 효과는 이 극 전체를 통해 유일하게 만족한 부분이기도 했다.  

 

 전위예술 前衛藝術 avant-garde

 

전위예술이란 본시 군대용어로, 전투할 때 선두에 서서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부대의 뜻이다. 이것이 변하여 러시아혁명 전야 계급투쟁의 선봉에 서서 목적의식적으로 일관된 집단으로서의 정당과 그 당원을 지칭하게 되었다. 그것이 이윽고 예술에 전용()되어 끊임없이 미지의 문제와 대결하여 이제까지의 예술개념을 일변시킬 수 있는 혁명적인 예술경향 또는 그 운동을 뜻하기에 이르렀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국내에서 신뢰하고있는 극단 5개만 꼽으라고 해도 절대 빠지지 않는 좋아하는 극단에 완성도도 높은 작품을 보았으면서 이상하게 뒷맛이 개운하지 않았다. 이전까지의 무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요소들의 조합을 시도하는 '아방가르드 예술작품'이라는 기획의도와는 달리, 모두가 어디선가 볼 수 있었던 요소들만 가지고 조합한 '아방가르드'인 척하는 '어벙가르드'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오직 '감'으로 수사했던 기존의 가난한 작품들이 더 좋았다. '과학수사'의 장비들이 더하니 완벽한 수사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지만 '과학수사'에도 허점이 있고, '과학수사'를 이용한 범죄도 늘어난다는 것을 간과하면 안될 것이다.

관객도 진화한다. 아니 관객이 진화한다.

 

라스꼴리니코프와 포르피리, 자묘또프만 등장하여 '과학수사'와 '직감수사', 범인(凡人)과 비범인(非凡人)선과 악에 대한 팽팽한 공방전과 문답만 있어도 훌륭한 연극이 되지 않았을까 싶었던 만큼, 호연에도 불구하고 쏘냐와 어머니 뿔혜리야의 존재감이 적었다. 

 

명품극단과 김원석 상임연출은 ‘죄와 벌’을 텍스트로 삼아 3부작을 만들었다고 한다. 내가 관람한 좌와벌-죄를 고백함, 푸르가코리움-하늘이 보이는 감옥에 이어 더 게임은 3번째 작품이다. 흠..이 분은 3부작을 좋아하시나 보다. '한국문학3부작 시리즈: 메밀꽃 필 무렵, 봄봄, 관촌수필-옹점이를 찾습니다' '고골 3부작 시리즈: 비이, 행복한 죽음, 광인일기' 도 이 극단의 산물이다. 올 4월에는 '죄와벌 시리즈'의 두 번째 제작인 '푸르가코리움-하늘이 보이는 감옥'이 국립극장에서 공연된다고 하니 관람할 예정.

 

불만이 가득해 보이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그 동안 봐왔던 이 극단의 고유의 색깔에서 어쩐지 많은 변화가 있었던 듯 하여 그저 한숨이 나왔을 뿐이다.

 

 

http://blog.naver.com/sun2y/130133285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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