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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양심을 옭아맨 거미줄이 숨통을 조여간다… “당신, 범인 맞지?”
: 관리자   :   :   : 2012-03-23 11:42:22  ㆍ: 3602

■ ‘더 게임-죄와 벌’ ★★★★

팽팽한 검은색 로프로 거미줄을 형상화한 ‘더 게임-죄와 벌’의 무대 세트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는 포르피리 검사 역의 남명렬 씨. 남 씨 발밑의 도끼 형태의 지하공간과 거미줄 위로 설치된 공중그물, 그리고 2층 극장 기둥 옆 공간까지 무대로 활용된다. 명품극단 제공

이 연극, 도끼와 같다. 도스토옙스키의 장편소설 ‘죄와 벌’에서 연극적으로 필요한 부분만을 쩍쩍 패어내 날 선 범죄 심리게임으로 쪼개냈다. 팽팽한 심리전을 위해 원작의 길고 장황한 대사를 짧게 찍어냈고, 등장인물도 묵직한 다섯 명으로 압축했다.

주인공은 둘. 하나는 완전범죄를 꿈꾸는 천재적 범죄자, 라스콜리니코프(오경태)다. 그 맞수는 촉이 뛰어난 노회한 검사, 포르피리(남명렬)다. 원작 소설에서 포르피리는 서른다섯 살이지만 연극에선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은퇴를 코앞에 둔 능구렁이 수사관으로 변신시켰다.

연극은 영화와 달리 끔찍한 범죄를 눈앞에 재현할 필요가 없다. 전당포 노파와 그 여동생을 도끼로 살해한 범죄는 이미 벌어진 상황. 연극은 바로 라스콜리니코프와 포르피리의 대면으로 달려간다. 포르피리는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한 라스콜리니코프를 만나자마자 “당신이 바로 범인입니다”라고 단언한다. 도대체 뭘 근거로? 

여기서 라스콜리니코프의 저 유명한 논문 ‘범죄에 관하여’가 바로 등장한다. 포르피리는 품에서 그의 논문을 꺼내 라스콜리니코프의 발치에 집어던지며 “이건 그 예고장”이라고 목청을 높인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 논문 말미에 잠깐 언급된 범인(凡人)과 비범인(非凡人)에 대한 팽팽한 문답을 펼친다. 세상을 보존해야 하는 대다수 범인은 법의 굴레를 벗어나면 범죄자로 전락하지만 솔로몬 마호메트 나폴레옹처럼 세상을 변화시키는 소수의 비범인은 법의 경계를 뛰어넘는 초법적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논지에 대한 논리대결이다. 

엄격한 법 집행자에서 어느새 가르침을 청하는 학생의 자세가 된 포르피리는 라스콜리니코프의 허영심을 한껏 자극하면서 그의 양심에 거미줄을 치고 서서히 옥죄어 가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평범한 사람과 비범한 사람은 어떻게 구별 가능한가, 당신 자신은 평범한 사람인가 비범한 사람인가,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면 비범한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지금 양심의 가책이란 복병을 만난 당신은 비범한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 아닌가.

 

연극을 관통하는 두 사람의 팽팽한 논쟁은 도스토옙스키야말로 “진정한 주권자는 법의 지배 바깥에 위치한 사람”이라는 나치 독일의 법학자 카를 슈미트 이론의 선취자라는 깨달음을 안겨준다. 한발 더 나아가 슈미트의 대척점에 서서 평범한 사람들까지 무심하게 악에 물들게 만든 전체주의에 대한 해나 아렌트의 비판과 어떤 국민의 생명유지의 권한을 박탈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 현대정치의 본질이라고 설파한 미셸 푸코의 생명정치론 역시 ‘범죄에 관하여’의 각주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라는 지적 자극까지 안겨준다.

이는 ‘죄와 벌’을 텍스트로 삼아 ‘죄와 벌-죄를 고백함’(2005년)과 ‘푸르가토리움-하늘이 보이는 감옥’(2010년)에 이어 세 번째 작품을 무대화한 김원석 명품극단 상임연출가의 열정의 산물이다. 

여기에 ‘죄와 벌’ 3부작 모두에서 라스콜리니코프 역을 맡게 된 오경태의 젊은 패기와 중후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남명렬의 노련함이 충돌한 연기 대결도 한몫을 한다. 소냐 역 김호정 씨의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빛이 바랜 점은 아쉽다.

무대 전체를 감싸는 거미줄을 형상화한 독특한 무대 디자인, 라스콜리니코프가 전당포 노파를 살해했던 도끼 형태의 지하실 그리고 검은색 로프로 엮은 거미줄 위에 쳐놓은 공중그물로 이뤄진 입체적 무대미학도 강렬하다. 거미줄은 라스콜리니코프를 억압하는 비참한 삶의 조건인 동시에 내면세계를 구속하는 양심의 가책을 상징한다. 그런 점에서 연극이 시작할 때 공중에 매달린 반투명알을 찢고 빠져나와 극 중간중간 무대로 침입해 라스콜리니코프를 테이프로 휘감는 마이미스트(이정훈)의 존재감도 묵직하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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