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Untitled Document
       [문화저널21] 거미줄의 세계, 연극 ‘THE GAME 죄와 벌’
: 관리자   :   :   : 2012-03-23 12:17:13  ㆍ: 4432

이영경기자 

 
[문화저널21·이코노미컬쳐 이영경 기자] 소설 <죄와 벌>은 7월 초순경의 지독하게 무더운 저녁나절, 한 젊은이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5층 건물의 지붕 바로 밑, 방이라기보다는 옷장과도 같은 곳에 살고 있는 청년의 작은 공간과 후덥지근한 여름 공기, 더러운 거리, 악취 등은 가난하면서도 예민한 청년의 혼란을 가중시킨다. <죄와 벌>에서 드러나는 시공간적 배경은 주인공 라스꼴리니꼬프의 삶과 긴밀히 연결되는 동시에 그의 정신세계를 상징한다. 소설 속 주인공이 환경의 영향을 받듯 연극 <THE GAME 죄와 벌> 속 인물들은 무대 구조에 장악돼 있다. 연극의 무대는 소설 전반에 걸친 시공간의 묘사가 아닌, 심리 세계를 구현해 낸 하나의 내적 장소라 볼 수 있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면서도 인물의 심리와 가장 근접해 있다.
 
거미의 거미줄돌기를 통해 나오는 액체는 공기와 맞닿으면서 단단하게 굳는다. 이 거미줄은 얇지만 바람을 견디고 곤충을 결박시킬 만큼 질기고 강하다. 거미는 농사에 방해되는 벌레들을 잡아먹는다. 소설 속 라스꼴리니꼬프는 소냐에게 말한다. “…은인이 되건, 아니면 평생토록 거미처럼 거미집에서 모든 것을 잡아, 살아 있는 생명의 즙을 빨아 먹게 되든 말든…” 배경일 뿐 아니라 그 공간에 존재하고 있는 인간의 정신적 세계까지 드러내는 무대는 굵고 단단한 거미줄로 이루어져 있다. 그 거미줄 한가운데 예심판사 뽀르피리가 서 있다. 이어 라스꼴리니꼬프가 등장한다. 이제, 게임이 시작된다. 결국, 거미줄에 걸리게 되는 것은 누구일까.
 
스스로도 쉽게 분석하고 정의하기 힘든 복합적 살인의 동기와 예기치 못한 양심의 가책으로 분열되는 라스꼴리니꼬프의 정신을 뽀르피리는 관통하고 있다. 증거 없는 상태에서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뽀르피리와 그것을 불안하도록 굳게 견디고 있는 라스꼴리니꼬프의 팽팽한 심리전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사건’이며 완결성을 가진다. 연극은 여기서 출발한다. 이미 살인사건은 저질러졌다. 뽀르피리는 안다. 병약한 청년 살인자의 말들이 이중적 의미를 띠고 있으며 전당포 노파 살인사건은 단순한 보복 살인이 아닌, “환상적이고 암울한 사건” “현대적인 사건” “편안함이야말로 인생의 전부라고 선전되는 우리 시대의 사건”임을 직시한다. 그는 라스꼴리니꼬프의 눈이 아닌 마음을 냉혹한 시선으로 응시한다. 
 

 
연극 <THE GAME 죄와 벌>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뽀르피리다. 직감적으로 라스꼴리니꼬프를 진범이라 단정한 후 끈질긴 논쟁을 이어가는 뽀르피리는 라스꼴리니꼬프의 논문 <범죄에 관하여>를 언급하며 심리적으로 그를 옥죄어간다. 뽀르피리 역을 맡은 배우 남명렬은 살인자 못지않은 이중적 행동, 억양, 눈빛으로 연극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자신이 만든 거대한 거미줄에 걸려들 미끼를 이성과 논리, 의심과 확신이 가득한 예리한 시선으로 집요하게 쫒는다. 
 
두 남자의 심리게임을 그린 연극은 라스꼴리니꼬프와 뽀리피리에 대해 단정하지 않는다. 살인과 정신적 분열에 대한 해석에 대해서도 말을 아낀다. 대신 배심원을 가정하므로 ‘죄’와 ‘벌’ 그리고 인간의 근원적 공포와 분노에 대한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나약한 소냐와 라스꼴리니꼬프의 어머니 쁠리헤리야, ‘비범인’ 즉 ‘초인’임을 확인하고 싶었으나 자신이 ‘범인’을 마음대로 죽일 수 있는 ‘비범인’이 아니라는 것만을 자각하게 되는 라스꼴리니꼬프, 그리고 거미줄로 뒤덮인 십자가 무늬의 ‘심판장’을 지배하는 듯 보였던 뽀르피리까지 결국은 모두가 거미줄 안에서 고뇌하는 한 인간임을,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사실은 거미줄 안에서 꿈틀거리는 나약한 존재임을 연극은 보여주고 있다.
 
연극 <THE GAME 죄와 벌>의 상징적이고 실험적인 무대와 배우들의 호연은 약 90분가량 진행되는 연극의 밀도를 높였으나 소냐, 쁠리헤리야가 갖는 역할의 의미, 먹잇감을 옭아매는 투명 거미줄의 활용과 효과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lyk@mhj21.com

 




Untitled Document
Untitled Docu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