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Untitled Document
       지난 100년 최고의 욕설은 단연 ‘빨갱이’
: 관리자   :   :   : 2012-06-19 14:29:20  ㆍ: 4348

지난 100년 최고의 욕설은 단연빨갱이

 

[크리틱] 욕설 크리틱 / 서해성
대선을 앞두고 다시 강습한다

니기미. 그리하여 이렇게 시작해야 마땅한 첫머리에 메리, 케리, 그리고 쫑을 올린다. 해방 직후 이들은 도회와 시골, 기와집과 초가를 가리지 않고 마루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한국인에게 ‘메리의 추억’은 사람이 아닌 개와 함께한다. 좀처럼 개에게 사람 이름을 갖다 붙이는 법이 없던 이 땅 사람들은 그 무렵 일제히 견명을 숫제 통일해버렸다. 알다시피 그 으뜸은 메리로 암수조차 거의 구분이 없었다. 새로운 지배자에 대한 모방을 통한 강자 능멸이다. 한국 모던 욕설은 이렇게 빠다를 칠하면서 입을 열었다.

메리, 케리, 쫑이 잠시 쓰고 버리는 물건 같은 존재들이 와이캡이었다. 하필 노랑색인 택시와 한국 여인은 부르면 온다는 뜻이다. 양공주. 자기부정을 존중 어리게 표현한 이 놀라운 비아냥거림은 베트남에서는 사이공 티가 된다. 차 한잔 값의 여인들은 전쟁 뒷골목의 소모품이었다. 이 화냥년에게서 태어난 튀기는 병자호란이 낳은 후레자식의 뒤를 잇고 있다.

20세기 한국인이 퍼부은 욕설에 나타나는 뚜렷한 양상은 외세에 대한 민중의 대응이다. 짱꼴라, 로스케, 쪽발이, 양코쟁이는 주변 4대 강국에 대한 경계의식을 집약한 간명한 규정이다. 중국인과 러시아인에 대한 모멸 어린 말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때 일본이 만들어낸 심리전적 언어였다. 여전히 그 말이 생동하고 있는 곳이 한국 땅이란 건 욕설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에 비춰 현실을 견주어보게 한다. 봉건시대에 생멸했던 숱한 욕설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욕이 상대의 낯바닥에 가래침으로 끈끈하게 달라붙게 하려면 먼저 욕하는 자의 혀에 말이 감겨야 한다. 차진 욕은 비유와 풍자가 적확함을 넘어설 때 맛이 있는 법이다. 곰삭은 홍어나 퇴비처럼 걸면 이내 욕설 판을 밟고 세상으로 나아가 욕을 보이게 된다. 맛난 욕의 기본조건은 역시 육덕에 있다. 그 육두문자란 스스로를 낮춰 지배자를 눈높이로 끌어내려 동류화한 다음 능멸코자 하는 자기비하적 저항이다. 이때 균열감을 느끼는 건 권력이지 민중은 아니다. 여럿이 들을 때 욕을 내뱉는 건 욕설 공유 과정을 거쳐 분노를 인정받고 조직화하는 일이다. 한국인의 언설에 유난히 욕이 자주 섞인다는 건 한국 사회 모순의 크기와 이에 응전하는 대중의 폭넓은 양태를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모름지기 욕이 있는 곳에 불평등과 모순이 있다.

지난 100년 역사에서 최고 욕설을 꼽으라면 단연 빨갱이, 이 세 글자다. 빨갱이라는 말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는 이성과 합리성과 비판, 토론이 사라지고 공공연한 불특정 음해가 권력을 행사하게 된다. 대선을 앞두고 이 욕설이 몇 개 수식을 앞에 붙이면서 전면적으로 한반도 남쪽을 다시 강습하고 있다. 내부 분열을 강화해 모순을 뒤덮고 사회의제를 소멸시켜 낡은 냉전적 공격으로 세를 굳히겠다는 의도가 명백하다. 지구상의 마지막 매카시즘적 저주와 폭력언설인 빨갱이 욕설은 이참에 끊어내야 한다. 이를 금하는 걸 법으로라도 정할 필요가 있다.

87년 대선에서 민주진영이 패배한 뒤 남도 한 마을에서 개 이름을 모조리 태우로 부르는 걸 본 적이 있다. 듣는 이나 부르는 이나 모욕으로 얻는 쾌감보다 시대의 좌절감이 더 컸던 것을 여적지 기억하고 있다. 올겨울, 메리, 케리, , 태우에게 또 새로 욕설을 뒤집어씌우고 싶은가. 쿠데타와 독재와 독점으로 어제를 훔친 자들이 내일까지 훔치려 하는 이 형국을 바꿔낼 때까지는, 그리하여 끈질기게 욕을 퍼부어도 좋다, 니기미!

서해성 소설가

 




Untitled Document
Untitled Docu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