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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단 <명품>의 레퍼토리 공연과 재탄생된 <죄와 벌>
: 관리자   :   :   : 2008-04-06 21:55:25  ㆍ: 4055

데일리 서프라이즈

 

극단 <명품>의 레퍼토리 공연과 재탄생된 <죄와 벌>

[문화칼럼] ‘명작’과 ‘명품’에 관한 새로운 이해의 연극들
입력 :2008-04-06 14:09:00   김효 편집위원

 

▲ 연극 <죄와 벌>의 한 장면 

언제부터인가 연극판에서도 사람들은 ‘명작’이라는 용어 대신 ‘명품’이란 용어를 즐겨 사용한다. 명작은 셰익스피어나 괴테 등 ‘위대한’ 예술가들이 남겨 놓은 예술작품을 부르는 이름이며, 명품은 상품에 사용하는 호칭이다. 즉 잘 팔리는 유명한 상품이 명품이다.

위대한 예술 작품 즉 명작은 천재적인 영감에서 탄생된다. 그에 반해 스트라디바리 바이올린이나 야마하 피아노 같은 명품들은 천재적인 영감보다는 끈질긴 장인 정신의 산물이다. 정교한 기술은 명품을 탄생시키는 전제 조건이며, 섬세하게 단련된 장인의 손끝에서 태어난 예비 명품들은 일정한 세월의 검증 기간을 거쳐 명품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즉 세인의 인증 과정을 거쳐야 진정한 명품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연극에서의 명품은 어떻게 탄생할까? 우선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어야겠지만 세인의 뇌리 속에 좋은 공연으로 각인되기 위해서 공연은 일정정도 반복되어야 한다. 그래서 세계의 유명한 극단들은 ‘레퍼토리 시스템’이라는 것을 가동한다. ‘레퍼토리 시스템’이란 잘 나가는 하나의 작품을 가지고 롱~런 하는 것이 아니라 극단의 예술철학을 반영한 대표적인 작품들을 레퍼토리로 선택하여 번갈아가면서 공연하는 공연방식이다.

극단 <명품>은 2005년에 창립된 젊은 극단으로써 배우의 에너지와 빼어난 상상력으로 이미지연극의 새로운 장을 열어가고 있다. 극단 대표 김원석에 의하면 “사람들이 명품을 사고 싶어 안달하듯이 관객들이 보고 싶어 매표소 앞에 장사진을 이루는 연극의 명품”을 만들겠다는 각오로 극단의 이름을 <명품>으로 지었다. 매년 레퍼토리 퍼레이드를 벌이는 이 극단은 2008년 봄 시즌으로 신작 <죄와 벌>을 추가하여 4월 26일까지 다섯 편의 레퍼토리 퍼레이드를 펼친다.

이 극단의 명품 만들기 전략은 우선, 소위 명작으로 불리는 문학 작품만을 고집하는 것이다. 고골 3부작 <광인일기>, <비이>, <행복한 죽음>을 시작으로, 작년에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무대에 올렸고, 명품 만들기 제 5탄으로 현재 국립극장의 별오름극장에서 공연 중인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이 모두가 세계의 명작, 한국의 명작들이다.

극단 <명품>이 선보이는 공연의 텍스트는 고색창연한 ‘고전’들이다. 하지만 이 극단은 모던 시대의 명작에 포스트모던의 옷을 입혀,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명작을 매혹적인 명품으로 바꿔 놓는다.

예술에서의 탈근대 즉, 포스트모던의 가장 큰 특징은 근대의 문화 권력이 분할해 놓은 장르와 국적, 양식 등 영역 간 경계가 무너지는 것이다. 근대의 공간 즉 모던의 시대에 각기 분리되어 있던 것들이 서로 몸을 섞어 다양한 혼종(hybrid)들을 생산하면서 포스트모던의 공간은 문화적 다원화와 다양성이 꽃피는 역동적인 생성의 공간을 만들어 낸다.

극단 <명품>은 연극 무대에 소설을 끌어 들여 소설과 연극을 ‘교배’ 시킨다. 다섯 편의 레퍼토리가 모두 소설을 연극화한 것이다. 보통 소설을 연극화하는 경우, 소설을 대화체로 바꾸어 각색하지만, 이 극단의 작품들은 소설 원전을 대화체로 각색하지 않고 토씨 하나 안 바꾼 채 그대로 무대에 들여 놓는 점이 포스트모던하다.

소설을 한편의 희곡 작품으로 각색하는 것은 소설을 연극에 종속시키는 행위이다. 반면, 소설을 그 자체로서 인정하고 연극과 대등하게 접속시키는 것은 모든 타자들을 주체로 인정하는 포스트모던의 사유와 맥을 같이 하는 예술적 비전의 소산이다.

극단 <명품>은 버벌(verbal) 언어인 소설에 넌버벌(non-verbal) 언어인 이미지를 결합시킨다. 이미지는 비언어적인 것의 총체, 즉 물질, 감각을 가르킨다. 말은 관념적인 설명을 하지만, 이미지는 어떤 순간적인 상황을 아주 상세하게 보여주고 농밀하게 느끼게 할 수가 있다.

▲ 연극 <메밀 꽃 필 무렵> 의 한 장면 

‘진정한 느낌은 설명이 불가능하다’따라서, 글로 써진 명작이 이미지와 접속할 때, 명작 속에 내재해 있는, 필설로는 다할 수 없는 상태와 감정을 보여주고 느끼게 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극단 <명품>은 배우의 신체 행동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와 미니멀한 소도구를 통해 설명 불가능한 느낌을 명작 속에 불어 넣어 명작을 명품으로 되살려 낸다.

극단 <명품>이 창조한 <죄와 벌>의 무대에는 현실의 공간을 재현하는 리얼리즘적인 미장센은 찾아 볼 수 없다. 도끼와 떨어진 문짝들, 그리고 한쪽 면에 계단을 달고 있는 조그만 큐빅 형태의 철골이 배우들에게 주어진 소품의 전부이다. 하지만 한사람이 들어가면 꽉 찰만한 크기의 철골 큐빅은, 좁은 방 속에서 칩거하는 라스콜리니코프의 터질 것 같은 분노와 욕망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그 어떤 사실적인 방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효과적이다.

밧줄로 묶어 라스콜리니코프가 등으로 버텨내고 있는 세 개의 겹쳐진 문짝은 단지 그가 겪고 있는 심리적인 압박감을 상징하는 상징기호만이 아니다. 그것은 그것이 상징하는 의미와 무관하게 그 하중감 자체로써 관객의 감각 속으로 육박해 들어가는,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느낌을 촉발하는 물질-이미지이다.

이미지에 탑재된 언어는 더 이상 형해한 언어가 아니다. ‘유전무죄’의 부조리한 현실에 항변하는 라스콜리니코프의 명대사들이 이미지와 접속되면서 소설로는 불가능한 농밀함과 강렬함으로 관객들의 가슴에 날아와 꽂힌다.

<죄와 벌>이 삶과 죽음, 이상과 현실과 관련된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만큼 고조된 긴장으로 일관해 가는 것이 관객에게 다소 버겁게 느껴질 수 있지만, 뒤이어 무대에 오를 <메밀꽃 필 무렵>은 흥청거리는 시장판과 서정적인 시골의 달밤 풍경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인 만큼 춤과 음악이 수반되고 코믹하며 다채로운 이미지들이 도입되어 이효석의 소설을 더욱 재미있고 서정성 풍부한 작품으로 재탄생시킨다.

한국의 춤사위를 서양 사교댄스의 동선으로 안무하여 친숙하면서도 색다른 느낌을 주는 춤을 추면서 관객을 즐겁게 하는 <메밀꽃 필 무렵>은 자칫 난해해지기 쉬운 실험성이 오히려 대중성을 확장하는 데 기여하는 작품이다.

삶과 죽음의 문제를 바흐틴이 말하는 축제적인 세계관으로 풀어 낸 고골3부작은 러시아의 다양한 전통음악과 가야금이 절묘한 하모니를 이루면서 관객의 즐거운 상상력을 자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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